디지털 화폐, '미래 금융' 급부상..각국 중앙은행 논의 활발, 한국만 '신중론'

이기철 기자 승인 2020.11.19 12:21 | 최종 수정 2020.11.19 12:23 의견 0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미래의 금융'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료=컨센시스)

[디지털머니=이기철 기자]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내에서는 현재 CBDC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관망주이며 급하게 발행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변국들을 중심으로 CBDC 도입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중국·일본·러시아에서는 이미 CBDC 발행에 대한 진척이 상당히 이뤄졌다.

CBDC는 이름처럼 디지털로 전송할 수 있는 화폐로 언뜻 가상자산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지폐나 동전처럼 유통가치가 얼마인지 정해져 있고 중앙은행이 발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에 보안성이 뛰어난 블록체인을 적용해 새로운 법정화폐를 발행하려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CBDC는 '미래의 화폐'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 4개 도시 CBDC 거래금액 20억위안 달성

1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CBDC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현재 CBDC 시범운영 중에 있다. 벌써 거래금액은 20억위안(한화 약 3390억원), 거래 수도 400만건을 돌파했다. 이 강(Yi Gang) 인민은행 총재는 홍콩 핀테크 위크 컨퍼런스에서 "현재 중국은 선전 등 4개 도시에서 CBDC를 유통하고 있다"며 "CBDC 시범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CBDC 발전을 위한 인민은행의 노력은 특허 보유 수에서도 나타난다. 블록체인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5번째 특허권자가 중국 인민은행일 정도로 인민은행은 CBDC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여기에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 플랫폼 기업의 결제도 일상화되는 등 중국은 현재 전통 금융기관이 아닌 플랫폼 기업들이 금융을 주도하고 CBDC를 통한 디지털 화폐로 빠르게 이행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를 갖췄다.

러시아, CBDC 육성 통해 가상자산 견제 나서

러시아도 중국처럼 가상자산에는 부정적이나 CBDC 개발에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는 루불화와 연동되지 않는 디지털 화폐의 사용을 줄곧 부정해왔다. 알렉세이 구즈노프(Alexei Guznov) 러시아 중앙은행(BoR) 법률 부문 책임자는 지난달 "CBDC가 가상자산의 발전에 기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가상자산에 대한 수요를 낮출 수 있는 대안"이라며 "가상자산은 돈 세탁이나 테러 자금 조달 등 범죄에 사용되기 때문에 유통을 금지하는 등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렉세이 구즈노프는 가상자산을 금지하고 대안으로서 CBDC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앞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CBDC가 러시아 내 미국 달러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관계자는 "CBDC 발행이 (미국의) 경제 제재 측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디지털 루블화를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가하는 대외 제재 위협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30여개 민간기업 참여 2022년 디지털 화폐 발행

유독 디지털 화폐에 낙후돼 있던 일본도 2022년부터 CBDC를 발행하고 서비스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중앙은행 중심의 CBDC 발행 대신 대기업을 통한 민간 디지털 화폐 발행으로 윤곽이 잡혔다.

지금까지 일본은행은 기존 상업은행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CBDC 발행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물론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CBDC에 대한 연구가 오랫동안 이뤄지기는 했지만 구현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발행 준비에도 수 년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 속에 연구는 제 속도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자 민간 기업들이 다수 모여 민간 기업 중심의 CBDC를 내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닛케이 신문은 19일 일본 현지 대형 은행 3곳과 NTT 그룹 등 30여 개 기업이 참여해 민간 디지털 화폐를 발행한다고 전했다. 디지털 화폐의 발행 시기는 2022년으로 발행 직후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CBDC는 스마트폰 등 기기를 통해 간편히 주고받을 수 있으며 기존 전자화폐와도 교환되도록 설계된다. 또 기업 간 대규모 대금 지불 및 결제에도 사용될 전망이다. 참여 기업은 2021년부터 대규모 실증 실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민간 CBDC 발행 참여 기업에는 미즈호은행, 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동일본여객철도(JR동일본), 세븐일레븐의 모회사인 세븐&아이홀딩스, NTT 그룹 등이 속해 있다.

한국, CBDC 연구는 하되 발행에는 '신중론' 견지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CBDC에 대해서 신중론을 펼치며 연구는 하되 도입은 유보하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은 CBDC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TF'를 구성하며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내년 추진 예정인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을 위해 외부 기관에 컨설팅을 의뢰한 상태지만 전문가들은 CBDC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9월 한국금융ICT융합학회 주최로 열린 CBDC 온라인 포럼에서 이천표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CBDC가 등장하면 시중은행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이며, 심할 경우에는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 교스는 또 "기술적 측면에서도 데이터 분석 등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는 만큼 성급히 도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라인의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을 전담하는 언체인의 이홍규 대표는 지난 11일 열린 테크B 콘퍼런스에서 "라인은 각국 중앙은행들과 CBDC 플랫폼 활용 논의를 긍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CBDC) 발행에 필요한 기술을 중앙은행들에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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