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② 중국발 '디지털 화폐(CBDC) 전쟁'에 영국 EU는 물론 일본도 가세

박응식 기자 승인 2020.01.30 10:56 | 최종 수정 2020.01.30 11:04 의견 0
 

[디지털머니=박응식 기자] 중국과 미국 간 통상 패권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연말에  겨우 일단락됐다. 하지만 양국의 갈등은 언제든지 다시 점화될 수 있는 상태로 그 전장은 디지털 화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올 상반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만들어 달러 패권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CBDC 발행 움직임에 최근 일본과 영국·유럽 중앙은행들은 디지털화폐(CBDC) 발행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에 전 세계 통화질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선진국들이 중국을 견제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디지털머니는 중국이 촉발한 '디지털 화폐 전쟁'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이번에는 두번째 순서로 유럽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CBDC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본다.[편집자 주] 

국제결제은행(BIS)이 2019년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의 70%가 CBDC 연구를 진행 중이다. 초기에는 화폐 가치가 불안정한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CBDC에 관심을 보였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를 선보인데 이어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예고하면서 선진국이 대거 뛰어들었다.

올 한해 각 국가 중앙은행은 CBDC 연구에서 더 나아가 발행 검토, 시범 운영 등을 통해 산업 생태계 주도권을 잡기 위한 패권 다툼에 나설 전망이다. 특히 최근 주목되는 것은 일본과 영국,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의 움직임이다. 

■ 글로벌 결제시장서 뒤처진 유럽에서도 CBDC 열풍

유럽중앙은행(ECB)도 디지털 화폐 발행 논의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로이터가 최근 입수한 ECB 내부 문건에는 “민간 업계의 효율적인 범유럽 결제 시스템 개발이 부족하다면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민간에서 CBDC에 대응할 만한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ECB가 CBDC 발행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블룸버그)

본래 유럽연합(EU)은 디지털 화폐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금융 안정성을 해치고 자금세탁과 같은 범죄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아시아 결제 시스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결제시장에서 유럽이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중앙은행이 먼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자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최근 유로존 국가로는 처음으로 CBDC 개발을 공식화했다. 리브라 등 민간 디지털 화폐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프랑수아 빌레로이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2020년 1분기 말까지 CBDC 시범 운영을 개시할 계획"이라며 "은행 간 거래에 먼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리브라를 ‘최우선 규제 대상’이라고 밝힌 영국 영란은행 역시 최근 CBDC 발행을 연구 과제로 선정했다. 앞서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리브라와 같은 새로운 핀테크 기술에 개방적인 접근 자세를 가지되, 개인정보보호와 자금세탁방지, 금융시스템 안정성 유지 등 다양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사진=블룸버그)

그는 특히 디지털 화폐가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따라서 CBDC모델을 참고해 각국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글로벌 디지털 화폐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화폐를 통해 미국 달러 영향력과 신흥 시장의 통화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2~3년 내 CBDC를 발행할 계획이다. 독일도 내각과 중앙은행이 CBDC 관련 긴밀한 협의에 나섰다. 세계 현황과 절차, 영향 등과 관련해 심층분석에 나섰다.

■ 금융포용 관점에서 논의되는 디지털 화폐

인구 규모가 작거나 현금이용 감소에 따른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또 금융 포용 수준이 낮은 특수 환경에 처한 국가들이 주로 CBDC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도미니카연방, 그레나다 등 동카리브해 지역 8개 섬나라는 동카리브중앙은행(ECCB)이 발행한 은행권을 공동 화폐로 쓰고 있는데, ECCB는 화폐제조·유통비용 절감과 금융포용 제고 목적으로 CBDC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포용’이란 은행 계좌 미소지자 등 현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돼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통화시스템 구축을 의미한다. 에콰도르, 우루과이, 튀니지 등도 이런 이유로 CBDC 발행을 검토 중이다.

스웨덴은 현금이용 축소에 따른 부작용 해소를 위해 CBDC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 인구 전체의 절반 이상은 노디어, 한델스방켄 등 스웨덴 상업은행들이 공동으로 개발해 서비스하는 모바일 간편 지급결제수단인 ‘스위시’를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 입장에선 지급결제 시스템의 민간 독점 방지에 나설 필요가 있고, 국민이 현금이용 축소에 따른 운영 리스크에 대비도 하게 해야 한다. 거래 은행이 도산했는데 현금이 없으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는 만큼 그 대안을 마련한다는 의미다.

■ 일본·영국·유럽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공동연구"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과 영국·유럽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CBDC) 발행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하면 일본은행(BOJ),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중앙은행(BOE), 스웨덴 릭스방크, 스위스 중앙은행(SNB), 캐나다은행(BOC) 등 6개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21일 ‘CBDC 활용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그룹’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행과 ECB는 블록체인 분야에서, 영국 중앙은행과 캐나다은행은 국가 간 CBDC 분야에서 각각 공동연구를 추진해왔으며 그동안 확보한 지식과 기술 등도 그룹 내에서 공유할 예정이다. 실제 CBDC 발행에 대해서는 각국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일본·유럽·영국 등 선진국이 디지털화폐 발행 문제에서 손을 맞잡은 것은 중국의 독주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데 따른 행보로 풀이된다.

여기에 20억명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을 추진하는 점도 선진국 중앙은행이 위기감을 느끼는 요인이다. 중국과 페이스북이 전 세계 통화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만큼 공동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디지털화폐가 본격 보급되면 선진국 통화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면서 “미국 달러 대신 위안화의 디지털화를 통해 기축통화의 패권을 잡으려는 중국에 대항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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