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머니=이기철 기자] 수십 년간 라이벌이 없던 인텔이 역대 최대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여전히 CPU 시장에서는 1위 기업이지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을 놓쳤고 그나마 앞서나가고 있는 CPU 분야에서는 신기술 도입도 뒤처지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재의 사고와 구조를 완전히 뒤바꾸는 혁신만이 인텔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넷플릭스가 그러한 혁신으로 변화를 꾀한 대표적인 예다.
■ 인텔, AMD에 기술 뒤쳐지며 역대 최대 위기 맞아
(자료=인텔)
반도체 업계에 익숙한 법칙 두 가지. 하나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고 다른 하나는 '황의 법칙(Hwang's Law)'이다. '무어의 법칙'은 24개월마다 반도체의 처리속도와 메모리의 용량이 2배로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황의 법칙'은 나아가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황의 법칙'은 1965년 발표된 '무어의 법칙'이 있었기에 알려질 수 있었다. 이 '무어의 법칙'을 발표한 이가 바로 인텔의 공동창립자인 고든 무어다.
인텔은 1960년대 후반 메모리 제조업체로 시작해 성장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컴퓨터의 핵심부품인 CPU에 집중하고 있다.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목표로 한 수익을 내지 못하자 사업 철수를 추진해왔다. 지난 20일에는 SK하이닉스가 중국 다롄에 있는 인텔의 메모리 사업부문을 10조3100억원에 인수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쟁사인 AMD(Advanced Micro Devices)가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용도에 따라 설계를 바꾸는 반도체) 분야 최대 기업인 자일링스(Xilinx)를 350억 달러(한화 약 40조원)에 인수했다. AMD의 자일링스 인수로 인해 향후 AMD는 인텔과의 경쟁이 한층 높아짐은 물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통신, 방위산업에서도 입지가 강화될 전망이다.
이미 인텔은 지난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7나노미터 공정을 적용한 차세대 CPU의 양산이 2022년 말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AMD가 지난해에 7나노미터 CPU를 출시했고 5나노미터 기술을 연구 중인 것과 비교하면 이미 CPU 시장에서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인텔의 위기에 대해 존 헤네시 알파벳 회장은 "인텔이 강력한 소프트웨어 기반과 생태계를 갖고 있지 않은 부분이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의 주력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기에 적극적으로 빠르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하는 산업에 맞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해야 하는데, 인텔은 그와 같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클라우드로 전환
(자료=마이크로소프트)
실제 그와 같은 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부지기수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넷플릭스(Netflix)를 꼽을 수 있다. MS는 PC의 OS와 MS 오피스 같은 소프트웨어를 주력 사업으로 유지했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모바일 생태계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빌 게이츠에 이어 MS의 2대 회장이 된 스티브 발머는 이후 서피스 등 하드웨어 제품을 늘리며 MS를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하드웨어 명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뒤늦은 스마트폰 진입과 소비자 친화적이지 않은 제품 등으로 시장에서 참패했다.
뒤이어 MS의 3대 CEO가 된 사티아 나델라는 클라우드 시장의 약진을 주시했고 이후 언제, 어디서나 MS 오피스 작업을 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 '오피스 365'를 출시했다. 이 클라우드 MS 오피스가 대성공을 거두자 나델라는 MS 윈도 전용 클라우드였던 윈도 애저(Windows Azure)를 모든 운영체제 기반의 퍼블릭 클라우드로 전환했다. 사티아 나델라의 결단으로 MS는 윈도 판매보다 더 높은 매출을 클라우드에서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아가 애플, 구글, 아마존에 밀리던 MS를 다시 한번 최고 IT 기업으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모바일 시장은 구글과 애플이 양분했고 태블릿PC 분야는 애플과 삼성에 밀리던 상황에서 MS의 CEO를 맡은 사티아 나델라는 SM 최대 위기 상황 속에서 클라우드와 모바일에 집중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 넷플릭스, DVD 대여에서 스트리밍으로, 콘텐츠 제작으로 변화
넷플릭스가 제작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드라마 '킹덤'(자료=넷플릭스)
넷플릭스의 변신은 더 드라미틱하다. 현재 전 세계 최대 OTT(Over The Top) 업체인 넷플릭스는 유료 가입자 수가 1억8000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본래 DVD 렌털 업체였던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넷플릭스는 DVD 미디어가 빠르게 보급되던 1998년 온라인 DVD 렌털 업체로 시작됐다. 당시에도 넷플릭스는 구독자들에게 택배로 무제한 DVD 대여 서비스를 제공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2005년 넷플릭스 가입자는 360만명까지 늘었지만 이미 DVD는 완전히 사양 사업이 됐다. 방송 콘텐츠가 디지털 HD 화질로 진화했는데 반해 DVD는 여전히 SD급 저해상도에 머무른데다 디스크 분실과 훼손이 많아 수익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때 넷플릭스는 느린 인터넷 속도가 개선되기만을 기다리며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해왔다. 인터넷 속도만 개선된다면 배송 과정 없이 콘텐츠를 배송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던 2007년 넷플릭스는 비디오게임기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0년에는 캐나다에 넷플릭스가 서비스됐으며 이듬해에는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까지 서비스 지역이 확장됐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단순히 OTT 서비스를 일찍 도입한 것만은 아니다. 넷플릭스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며 21세기 '콘텐츠 왕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 결정적이었다.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유료 회원 수를 크게 늘렸다. 이후 넷플릭스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기묘한 이야기', '로스트 인 스페이스' 등 자체 제작 콘텐츠를 꾸준히 늘리며 시청자들을 넷플릭스 콘텐츠 왕국에 가뒀다.
국내에도 진출한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킹덤', 독특한 세계관의 판타지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등 한국 콘텐츠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2020년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에만 2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으니 그 규모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MS와 넷플릭스 모두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성장한 사례다. 경험 많은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안주하지 않고 위기상황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인텔로서는 이 두 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한 모범 답안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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