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머니=박응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가 한시적 원격의료를 시행하면서 이를 계기로 본질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원격의료는 지난 20여년간 찬반여론이 충돌해온 '뜨거운 감자'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지난 2010년 이후 수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상임위 문턱을 넘지못하고 폐기됐다.
디지털머니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해묵은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원격의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편집자 주]
외국에서 환자와 의사 간 원격 의료(원격진료)가 약진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첫발도 못 뗀 채 맴돌기만 거듭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간 벽지 등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직접 병원을 찾아야하는 불편을 덜어주겠다며 시범사업을 들고는 나오지만, 정작 본 사업은 시작도 못하고 다시 원위치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7월 전국 규제자유특구 7곳을 지정하면서, 강원도를 헬스케어특구로 지정해 원격 의료 실증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시범사업은 환자가 원격진단 기기로 측정한 혈압과 혈당 수치 등을 의사에게 전송하는 원격모니터링 수준에 그쳤으나, 강원도 특구 사업의 경우 간호사가 환자 집을 방문해 원격진단과 처방까지 가능토록 한발 진전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환자와 의사 간 원격 의료가 아니어서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은 사업이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되면서 원격 의료 필요성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런 ‘규제 맴돌기’의 원인으로 의료계 반발과 규제를 가장 먼저 꼽는다. 의료계는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든다. 또한 현재 동네의원이 많아서 원격 의료를 하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시민단체에서는 의료민영화(의료보험 민간화로 보험료 상승)·의료산업화(의료수가 상승) 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원격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의 경제적 파급효과’ 연구 보고서를 펴낸 파이터치연구원의 김재현 책임연구원은 “원격 의료 지역은 해외에서도 산간벽지 등 의료 사각지대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치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곳에서 실시하는 것처럼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 "'코로나 19'로 원격의료 당위성 부각"
국내에서도 20여 년 전부터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여전히 불법으로 규정된 상태다. 정부는 2013년과 2016년 두 번에 걸쳐 원격의료 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결국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입법에 실패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한 원격의료가 명확한 시행 지침 없이 ‘의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방침만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에서 스마트폰 앱, 헬스케어 기기 등을 활용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것과는 달리, 관련 인프라가 전무한 국내에서는 환자 개개인이 의사·약사와 협의해 전화와 팩스, 계좌이체를 통해 직접 원격의료를 진행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스·메르스·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며 “이에 대비해 지금이라도 원격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인프라를 확충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장은 “원격의료를 법으로 금지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좋다고 해서 원격의료를 계속 금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임시적 조치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처음 원격의료를 모든 의료기관에 허용함으로써 의료계와 국민 모두 원격의료의 효용에 대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원격의료를 상시 허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원격의료를 통해 도서·산간지역 등의 의료 서비스 소외 문제 등을 보완할 수 있고 현재와 같은 전염병 창궐 사태에도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며 “그동안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국가마다 의료 환경이 다른데 무작정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근거와 당위성을 갖고 각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20년째 겉도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원격의료 관련 시범사업은 지난 1988년 처음 시작됐다. 경기·강원·경북에서 대학병원과 보건의료원 간 원격영상진단 시범사업이다. 이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산간 오지마을이 가장 많은 강원도다.
2004년 16개 농어촌시군에서 시작해 2013년 강원도 전역으로 확대했다. 물론 이 역시 보건소 등이 주도하고 있다. 2014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을 민간 의료기관까지 확대하려고 했으나 그럴 때마다 의료계 반대가 이어졌다.
인천광역시 옹진군내 도서벽지인 '자도' 주민들이 원격진료를 받고 있다.(자료=인천광역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상 원격의료는 불법이지만 현재 9개 시·도 , 45개 시·군, 419개소에서 원격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다만 이 원격의료서비스는 민간병원 대신에 대부분 공공기관이 나서 진행하는 시범사업이다.
사업 중 대부분이 보건소 또는 보건지소가 참여하는 형태다 보니 원격으로 진료를 하고 처방을 하는 주체도 공중보건의사들이다. 공중보건의사가 원격지의사로 원격진료에 참여해 보건진료소 공무원 혹은 방문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에게 판독, 처지 방법 등을 지원하는 형태다.
■ '강원도 원격진료특구' 지정도 무용지물
지난해 7월 정부는 강원도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규제특구'라는 명분을 내세워 원격의료를 부분적으로나마 허용해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현재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진단과 처방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실현도(자료=강원도)
특히 이 사업은 기존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달리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하고 환자가 보건소가 아닌 자기 집에서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진정한 의미의 원격의료가 시작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규제자유특구가 투자 유치, 실증사업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는데도 유독 강원도의 원격진단·처방만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규제자유특구 지정 발표 이후 의사협회와 지역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원격진단·처방사업의 핵심은 민간 의료기관들의 참여인데,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의료기관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원격진단·처방사업을 제외하고 건강관리 모니터링, 휴대용 X선 진단시스템을 이용한 서비스만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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