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근로자 1십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기업과실치사법 시행 직후인 2009년 감소했지만 2011년부터는 다시 증가했다. (자료=한국경제연구원)
[디지털머니=김정태 기자] 4차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중인 한국의 산업재해 처벌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도 이미 주요국 대비 강력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국회에서는 산업재해 발생 시 기업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리여부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경제 시대에 단순히 처벌 강화로 기대되는 산업재해 예방효과 역시 불확실하다는 주장이다.
■ 韓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英 ‘기업과실치사법’ 비해 의무범위 모호
16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한국과 G5(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국가에서 현재 시행중인 ‘산업안전 관련 법률’(산안법)을 비교‧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한경연은 한국이 별도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지 않더라도 산업재해 발생 시 기업에 대한 처벌 수준이 매우 강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산안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한국은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아울러 근로자 사망이 5년 이내에 반복해 발생할 경우 형량의 50%를 가중한다.
이에 비해 미국(7000달러 이하 벌금), 독일(5000유로 이하 벌금), 프랑스(1만유로 이하 벌금)는 위반 사항에 대해 벌금만 부과한다. 일본(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 벌금), 영국(2년 이하 금고 또는 상한이 없는 벌금)은 징역형의 수준이 한국보다 크게 낮았다.
산안법 이외에 별도의 제정법으로 산업재해시 기업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는 영국이다. 한국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보다 처벌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과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최고경영진의 중대한 과실이 산업재해 발생의 실질적 원인으로 작용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 (자료=한경연)
■ 영국·호주·캐나다, 산업재해 처벌강화 했어도 예방효과는 불명확
한국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의무·처벌대상의 범위가 사업주,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이사 및 의사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서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유해·위험방지의무 내용도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상의 위해를 입지 않도록’ 되어 있는 등 모호하고 광범위해 기업이 의무의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최고경영진의 중대한 과실이 산업재해 발생의 실질적 원인으로 작용해야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처벌요건이 엄격하고 제한적이다.
한국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사망 또는 상해 사고에 대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법인을 모두 처벌하는 반면, 영국 기업과실치사법은 사망에 한해서 법인에게만 처벌한다.
특히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형사처벌을 강화한 국가들의 사례를 볼 때 기업 처벌강화의 산업재해 예방효과는 불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은 근로자 1십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기업과실치사법 시행 직후인 2009년 0.5명으로 시행 직전인 2006년 0.7명보다 감소했다. 하지만 2011년부터는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호주와 캐나다도 기업 처벌강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처벌강화로 인한 효과는 불명확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경연 추광호 경제정책실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활동 위축,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법 제정을 지양해야 한다"면서 "산업현장의 효과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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