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규제 두고 금융위-한은 '갈등'..'지급결제 권한' 타협 시도 '2차전'

김민정 기자 승인 2020.11.30 16:45 | 최종 수정 2020.11.30 16:54 의견 0
지난 29일 금융위원회와 윤관석 의원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진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금융시장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있는 모습. (자료=금융위)

[디지털머니=김민정 기자] 국내외 빅테크의 금융산업 진출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급결제제도와 관련해 서로 상반되는 내용의 법안이 동시에 발의되면서 한은과 금융위의 대립이 정치권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금융위와 국회 정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 대표 발의형식으로 한은의 의견을 반영해 절충안을 제시했다. 결론이 어떤 방향으로 내려질 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 "모든 거래 지급결제시스템 처리 의무화는 과잉규제"

30일 업계에 따르면 윤관석 의원은 지난 29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융위원회는 전자금융거래법이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금융 환경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판단 하에 전면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이 결국 의원 대표 발의형식으로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금융위 개정안의 핵심은 핀테크와 빅테크에 대한 금융업 규제의 구체적인 방법과 수위다. 한은은 개정안 추진 단계에서부터 지급결제 관련 규제는 금융위의 월권이라며 반발했다.

개정안에는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금융위가 이 업무를 담당하는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허가·감독 권한을 갖는 조항이 포함됐다. 아울러 핀테크·빅테크 업체들의 모든 거래를 의무적으로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의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도록 규정했다.

한은은 업체 간 거래 뿐만 아니라 한 업체의 내부거래까지 모두 지급결제시스템에서 처리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과잉규제'라는 입장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핀테크·빅테크 업체의 내부거래는 금융기관 간 청산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지급결제시스템에서 처리할 이유가 없다"며 "주요국 가운데 핀테크·빅테크 업체의 내부거래까지 지급결제시스템에서 처리하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급결제시스템을 통해 핀테크·빅테크 거래를 훤히 들여다보겠다는 금융위의 구상은 금융결제원에 대한 관리·감독권 문제와도 얽혀있다.

금융위 정의에 따르면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은 '전자지급거래에서 발생하는 채권 및 채무를 차감하고 이에 따른 결제금액을 확정하며 결제를 지시하는 업'을 의미한다. 현재 이 정의에 해당하는 기관은 한은이 관리·감독하는 금융결제원이 유일하다.

한은으로서는 금융위가 자신들의 관할인 금융결제원까지 관리·감독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6일 열린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위의 개정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자료=한국은행)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직접 나서 금융위 개정안 관련 한은의 영역을 건드리는 지급결제청산업에 관한 우려를 표시했다.

이 총재는 "지급결제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태생적 업무"라며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이자 책임인 것이 (기관 간) 권한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다. 금융위가 빅테크의 내부 거래까지 (시스템에) 집어넣으면서 금융결제원을 포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결국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라고 강조했다.

■ 금융위·윤관석 의원, 한은 의견 반영 절충안 제시

결국 금융위와 윤관석 의원은 한은의 의견을 반영해 절충안을 제시했다. 개정안에는 '금융결제원 업무 중 한은과 연계된 업무에 대해서는 금융위의 감독·검사에서 제외한다'는 문구가 부칙으로 들어갔다. 한은이 금융결제원에 차액 결제 시스템을 제공함에 따라 신용 리스크, 유동성 리스트 등 결제 리스크를 감축하는 업무만 해당된다.

또 '금융결제원에 대한 전자지급거래 청산업 허가 절차도 면제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지급결제시스템의 총 관리 감독 권한은 금융위에 있다는 내용이다.

금융위와 한은의 대립은 2차전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한은 역시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나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은 지난 23일 한국은행의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보다 강화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은행이 지급결제제도에 관한 운영기준을 마련하게 하고 자료제출권, 시정요구권 등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중앙은행이 유일한 발권 기관으로서 리스크 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급결제제도 전반에 대한 책임과 권한 소재도 한은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급결제는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에 따른 채권·채무 관계를 지급수단을 이용해 해소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수 국가에서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금융기관 간 거래에 필요한 최종결제자산을 제공하며 지급결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중앙은행이 지급결제시스템을 관리·감독하는 나라는 미국, EU, 영국, 스위스 등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지급결제 업무는 결제리스크 관리와 유동성 지원이 핵심인 만큼,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의 태생적 고유 업무"라며 "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지급결제시스템을 운영·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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